K리그 용병 역대 레전드 순위 TO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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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K리그는 전 세계 프로축구 리그 중 유럽 주요 리그나 중동, 중국 리그를 제외하면 선수 연봉이 높은 축에 속하는 리그다.

아르헨티나 국적의 메시가 프랑스에서, 포르투갈 국적의 호날두가 사우디에서 뛰듯이 K리그에도 많은 K리그 용병 선수가 있다.

메날두

우리나라는 축구 프로 리그 창설원년인 1983년부터 외국인 선수가 허용되었다고 한다.

K리그 용병 선수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은 2020 시즌 기준 3+1+1명 보유, 3+1+1명 출전(아시아 쿼터, 동남아시아 쿼터 포함), 북한 출신 선수는 내국인 선수로 간주, 골키퍼 용병은 금지라고 한다.

골키퍼 용병이 금지인 이유는 사리체프, 샤샤 등 초창기 외국인 골키퍼 용병들이 너무 뛰어난 활약을 보여, 골키퍼라는 특수한 포지션을 외국인 용병들이 차지해버리면 국내 골키퍼 육성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일종의 보호 정책으로 금지해 놓은 것이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도 외국인 용병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용병 의존도가 그리 높지는 않다.

k리그-용병

그렇기에 화려한 커리어를 쌓고 K리그에 왔다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채 떠난 K리그 용병 선수도 많다.

저런 축구선수가 왜 우리나라 K리그에 왔었는지 궁금했던 K리그 용병 선수 중 인상 깊은 선수는 누가 있을까.


10위 : 헤나우도(브라질리그 득점 2위)

헤나우두 로페스 다 크루스 / K리그 등록명 : 헤나우도

헤나우두는 2004년 헤나우도라는 이름으로 FC서울에서 뛰었던 브라질 국적의 스트라이커이다.

k리그-헤나우도

k리그-헤나우도

프리메라리가의 소속팀인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에서 뛰었던 헤나우도는 당시 정조국의 9번을 빼앗았던 선수로 당시에 잘 알려져 있었다.

1990년 브라질 과라나클럽에서 프로에 입문했다.

14년간 브라질과 스페인의 명문 클럽에서 경험을 쌓은 백전노장으로 172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위치 선정과 헤딩력이 탁월했다.

그가 2004년 안양LG에 입단할 때 안양은 그의 11번째 클럽.k리그-헤나우도

(참고로 지금의 FC서울은 당시 안양LG였다.)

브라질 1부 리그 득점 2위(32골)에 올랐던 전적이 있었기에 안양LG는 당시 헤나우도에게 큰 기대를 모았었다.

하지만 안양에 입단할 때 헤나우도는 이미 33살로 전성기에서 어느 정도 내려온 상태였다.

결국 11경기 출장에 1골 1도움에 그쳤고, 적응에 실패하고 정기 리그를 마친 뒤 팀을 떠났다.


9위 : 제파로프(아시아 올해의 선수)

세르베르 레샤토비치 제파로프 / K리그 등록명 : 제파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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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경기 수만 128경기에 우즈베키스탄 대표팀 생활만 15년간 했던 아시아의 대표 미드필더 제파로프.

이 선수는 20살 때부터 우즈벡 최고의 유망주이자 리그 최고의 스타였고 리그 우승만 8년 연속으로 차지한 전설이다.

어느 팀을 가나 우승컵을 바라볼만한 실력과 뛰어난 리더십 덕분에 각 팀에서 주장을 도맡았다.

2011년 아시안컵에선 우즈벡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컵 4강행을 이끌었다.

2008년 우즈벡 리그 득점왕을 먹었고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받자 EPL의 첼시FC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의가 오기도 했었다.

k리그-제파로프

그랬던 그가 2010년, 자국리그를 떠나 선택한 팀은 K리그의 FC서울이였다.

놀랍게도 제파로프는 많은 유명 외국인 용병스타들이 몰락하는 가운데 그나마 2014년 성남에서 반짝 활약하며 팀의 FA컵 우승에 일조했었다.

k리그-제파로프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그는 해외리그의 높은 벽을 느끼긴 했지만 우즈베키스탄 역대 최다 A매치 출장자라는 위치와 우즈베키스탄 유일의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라는 높은 위상을 가진 선수였다.


8위 : 뤽 카스테뇨스(유망주 TOP 23인)

뤽 카스테뇨스 / K리그 등록명 : 룩

네덜란드 리그 페예노르트에서 성장해 유스 최다골을 기록한 네덜란드 국적의 선수다.

k리그-카르테뇨스카스테뇨스는 2010년대 지금의 손흥민, 네이마르, 필리페 쿠티뉴, 로멜루 루카쿠, 하메스 로드리게스 등과 함께 FIFA 선정 유망주 23인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k리그특히 2008년부터 네덜란드 연령별 대표팀에 승선해서 모든 득점 기록을 갈아 치우며 아리옌 로벤,로빈 반페르시를 이은 역대급 재능충이라고 불렸다.

k리그-카르테뇨스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 아스날, 리버풀, 맨유,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등 최고의 구단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자국리그의 페예노르트 잔류를 선언했다.

카스테뇨스는 20살 때 인터밀란으로 이적했지만 적응 실패로 다시 고국 네덜란드로 복귀해 부활을 알렸다.

참 운이 없었던 선수였는데 분데스리가의 프랑크푸르트로 이적 후 연속 멀티골을 터뜨리면서 날아오를 기세였다가 부상을 당해버린 것이다.

그 뒤로는 쭉 하락세.

이 슈퍼 유망주는 어느덧 나이를 먹게 되었고 2019년 말컹이 나간 빈자릴 채우고자 했던 경남으로 이적하기에 이른다.

k리그-카르테뇨스

하지만 경남에서의 연봉만 10억 가까이 되었었기에 팀과 맞지 않은 카르테뇨스를 오래 데리고 있을 수 없었고 1년만에 한국 생활을 정리한 카르테뇨스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갔다.


7위 : 오르샤(K리그 출신 빅 리거)

미슬라브 오르시치 / K리그 등록명 : 오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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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 국대로 발탁되어 8강 브라질전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한 데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활약해 팀의 4강행을 이끌었던 선수다.

주로 교체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카타르 월드컵에서 1골 2도움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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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스타로 올라선 후 프리미어리그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해서 30살에 빅 리그로 가게 되었다.

k리그-오르샤

그런 오르샤도 2015년까지만 해도 전남 드래곤즈, 2017년엔 울산에서 뛰었던 K리그 용병 선수였다.

사실상 오르샤가 K리그로 오기 전까진 그렇게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이탈리아 세리에B에서 그저 그런 선수였고 오히려 K리그에 와서 기량이 펼쳐져 유럽으로 재진출 된 선수다.


6위 : 파울루 힝크(독일 국대)

파울루 힝크 / K리그 등록명 : 힝크

브라질 출신 축구 선수로 증조부가 독일인이라 독일 국적도 가지고 있으며 브라질인 최초로 독일 국대에서 뛰었던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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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전북 현대에서 활약했던 파울루 힝크는 2000년대 초반 전북 현대에서 활약한 친구 에드밀손의 추천으로 한국으로 왔던 선수다.

당시 전북 현대가 엄청난 자금으로 외국인 용병들을 영입하고 있었는데 파울루 힝크도 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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힝크는 독일 국가대표였으며 유로 2000 주전에도 뽑힌 유능한 선수였다.

그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레버쿠젠에서 뛸 때 힝크는 분데스리가에서 정상급 미드필더로 활약해 독일 국대에 뽑힌 케이스였고, 1999년 컨페드컵 독일 국대 멤버이기도 했다.

당시 레버쿠젠 시절에 힝크와 중원을 구성했던 선수가 바로 제 호베르투와 미하엘 발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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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힝크는 2002년 이후 기량이 줄어들며 네덜란드 리그에 있다가 2004년 한국으로 왔다.

힝크가 한국에서 활동한 시간은 1년.

선수 개인적으로는 저조한 기록을 남기고 떠났지만 전북 현대가 당시 아시아 챔스 4강에 들었던 것을 보면 아쉬운 용병으로 볼 수 있다.


5위 : 대니얼 아킨슨(아스톤빌라 레전드)

데일리언 로버트 앳킨슨 / K리그 등록명 : 아킨슨

2016년 8월 잉글랜드의 한 축구선수가 경찰관으로부터 살해를 당했다.

경찰관은 징역 8년형을 받았고, 피해자는 과거 대전시티즌에서 뛰었던 대니얼 아킨슨이었다.

k리그-아킨슨

잉글랜드 아스톤빌라에서 뛰며 1994년 리그컵 결승에서 퍼거슨 감독의 맨유를 부시며 팀에 우승컵을 안긴 선수가 바로 아킨슨이었다.

따라서 아스톤빌라 팬들은 이 선수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고,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도 손꼽히는 공격수로 성장하게 된다.

많은 EPL 팬들도 이 선수의 이름을 많이 알고 있진 않지만,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골 가운데 한 장면을 만든 주인공으로는 종종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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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역대 EPL 골 중 TOP 20위안에 들 정도.

그렇게 사우디리그를 거쳐 2001년 대전시티즌 최초의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아킨슨은 대전에서 반년간 리그 4경기 1골이라는 저조한 기량을 보이며 6개월밖에 뛰지 못하고 전북 현대로 쫓겨나듯 팀을 옮겨야 했고, 이마저도 6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아내가 아킨슨의 전재산을 들고 튀어 조울증에 시달리다 2016년에 경찰의 테이저건을 33초나 맞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불과 48살.

k리그-아킨슨

그를 사랑했던 아스톤빌라 팬들은 아킨슨의 사망을 애도하며 허더즈필즈와 경기 전 1분간 박수를 보내며 비통함을 표했다.


4위 : 마차도(발렌시아, 브라질 국대출신)

레안드루 마샤두 / K리그 등록명 : 마차도

k리그-마차도

발렌시아와 스포르팅 등에서 뛰었던 브라질 국대 출신 공격수다.

마차도-이천수

2005년 울산은 이천수와 정규리그 득점왕 레안드로 마차도의 활약으로 9년만에 우승을 이룬다.

마차도는 2005년 여름부터 단 4개월 동안, 13골을 넣어서 득점왕에 올랐는데 이 최단기간 득점왕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마차도는 1998년 브라질 국대를 이뤘었고 좋은 신체조건과 헤딩력, 그리고 문전에서 뛰어난 위치선정으로 골 결정력이 좋은 선수로 평가가 됐었다.

k리그-마차도

그리고 K리그에서 단 17경기만에 13골을 터뜨린 것이다.

하지만 다음 2006시즌 26경기에 나서 마차도가 기록한 득점은 고작 1골.

결국 마차도는 2008년을 끝으로 한국을 떠났다.


3위 : 마그노(브라질 리그 득점왕)

마그노 아우베스/ K리그 등록명 : 마그노

k리그-마그노

전북 현대에서 뛰었던 브라질 국대 출신 선수다.

마그노는 선수생활 27년 동안 뛰었던 수만 23팀이다.

하지만 어느 리그에 가던, 어느 팀에 있던 리그를 폭격했던 마그노였다.

k리그-마그노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브라질리그에서만 무려 111골을 득점해내면서 2000년 득점왕과 주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랬던 마그노는 2003년 브라질 명문 구단이었던 플루미넨세를 떠나 전북 현대로 이적한다.

입단할 때 당시만 해도 K리그는 떠들썩 했다.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이기도 했지만 이적하자마자 2003년 44경기 27골 8도움을 기록하면서 리그 득점 2위에 오른 것이다.

1위는 한 골 차이로 김도훈이었다.

3월에 3골을 터뜨린 마그노는 5월 5골을 비롯해 7월까지 16골을 몰아넣으며 ‘어차피 득점왕은 마그노’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

역대 K리그에서 뛴 브라질 출신 선수는 400명이 넘는다.

마그노는 그중에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겼던 선수였다.

k리그-마그노

94년부터 무려 9년간 깨지지 않았던 윤상철의 정규리그 최다골(21골)기록을 K리그 데뷔한 해에 깨버린 선수가 바로 마그노였다.


2위 : 키키 무삼파(챔피언스리그 우승자)

키키 무삼파 / K리그 등록명 : 무삼파

k리그-무삼파

아약스 출신이며 K리그 역사상 세계관 최강급 네임밸류를 자랑하는 역사적인 선수다.

그동안 K리그로 온 용병중 최고의 커리어를 가졌다고 평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무삼파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자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21세 이하 대표팀 출신으로 아약스, 보르도, 말라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맨시티 등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은 미드필더였다.

무삼파-커리어
팀 케미 잘받겠다.

주목할 점은 무삼파가 12살 때부터 아약스 유스에서 성장해 1996년 아약스 소속으로 챔스 우승 커리어를 달성하고 1997년 챔스 결승전에선 아약스 선발 선수로 등장한 것.

그렇기에 2009년에 서울이 무삼파를 영입할 때 K리그 최초로 유럽 챔스 결승전 출장기록을 가진 선수였다.

무삼파

챔스 우승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에서 선수생활을 했을 때 모두 우승을 했던 이력도 존재했을 정도로 그야 말로 용병 커리어 끝판왕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왔을 때 31살이었던 무삼파는 엄청난 커리어에 비해서 한참 떨어지는 실력을 보여주며 서울 팬들의 속을 태우다가 단 2달 만에 서울에서 방출되었다.


1위 : 몰리나(코파 아메리카 우승자, 네이마르 동료 출신)

마우리시오 몰리나 / K리그 등록명 : 몰리나

FC서울에서 4년간 뛰며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몰느님‘이라고 불렸던 콜롬비아 출신의 선수다.

서울 시절 데얀과 함께 듀오를 이루며 K리그를 호령했었던 역대 최고의 용병중 하나인 그는 K리그에서 200경기 이상 뛴 K리그 용병 레전드 선수다.

기록의 사나이로 불린 그는 4년 연속 공격포인트 20개를 쌓는 등 182경기 만에 60골 60도움이라는 업적을 쌓기도 했다.

콜롬비아 특급인 몰리나가 K리그로 오기 전에 있었던 팀은 브라질의 명문 구단이며 네이마르로 인해 잘 알려진 산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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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마르와 몰리나.

무려 지금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명인 네이마르가 산투스에서 프로 데뷔 경기에서 몰리나를 대신해 교체 투입되며 프로 데뷔전을 가졌었다.

K리그-용병
이 둘은 아직 인스타 맞팔중이다.

2001년 남미 최고의 국가대항전인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 콜롬비아가 무실점으로 전승 우승을 달성 했을 때 몰리나도 우승 멤버였다.

코파아메리카2001

당시 인터밀란의 센터백 이반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마리오 예페스 등 뛰어난 수비수들을 보유한 팀이었다.

K리그로 오기 전인 2008년 몰리나는 남미 챔피언스리그 격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10경기 6골을 넣으며 팔카오, 리켈메를 제치고 득점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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