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정부가 암호화폐를 둘러싼 명확한 법제화에 다시 한 번 선을 그었다. 최근 공개된 정부 문서와 당국자의 발언에 따르면, 인도는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편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체계적 금융 리스크를 우려해 포괄적인 규제 입법을 유보하고 있다.
대신 강력한 과세와 자금세탁방지(AML) 감독, 금융정보분석원(FIU) 등록 의무 등을 중심으로 부분적 관리 전략을 고수하는 모습이다.
규제보다는 억제에 무게
인도준비은행(RBI)은 암호화폐 규제가 곧 합법성을 부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규제를 통한 제도화가 이루어질 경우 암호화폐는 단순한 투기 자산이 아니라 제도권 금융과 연결될 수 있고, 이는 금융 안정성을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 내 암호화폐 보유액은 약 45억 달러(6조 2천억 원)수준으로 아직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 만큼 크지는 않지만, 빠른 확산세는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와 함께 전면 금지론도 대안으로 거론됐으나, P2P 거래나 탈중앙화 거래소(DEX)를 통한 활동까지는 막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결국 인도 정부는 ‘허용하되 통제한다’라는 전력을 취하고 있다.
고강도 세금과 제한적 운영
인도의 암호화폐 과세 체계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엄격한 수준이다. 암호화폐 매매 차익에는 30%의 고정세율과 1%의 원천징수세(TDS)가 적용되며, 손익 상계나 이월 공제가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에 일부 거래에는 18%의 GST(상품 및 서비스세)까지 더해진다. 이러한 세금 규제는 거래량을 급감시켰지만 동시에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도 낳았다.
국내외 거래소는 금융정보분석원(FIU) 등록을 통해 제한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 바이낸스, 쿠코인 등 글로벌 대형 거래소들이 한 때 차단되었다가, AML 요건을 충족한 뒤 복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우려
당국이 가장 주목하는 위험 요인은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대부분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인도의 대표 디지털 결제 인프라 ‘UPI(통합결제시스템)’를 약화 시키고, 통화 정책의 자율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 RBI가 바라보는 시각이다.
미국이 2025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GENIUS 법안을 통과시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한 것과 달리, 인도는 한발 물러서 신중히 지켜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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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국민 여론과 주요국 암호화폐 정책 비교

흥미로운 점은 규제 환경이 모호함에도 인도가 글로벌 암호화폐 채택률에서 1위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체이널리시스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는 중앙화·탈중앙화 서비스를 모두 포함한 채택 지수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 활용도는 제한적이고, 과세 부담 때문에 투자자들의 불만은 크다.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93%의 응답자가 명확한 규제와 세제 완화를 요구했으며, 특히 젊은 층은 이를 선거 투표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견까지 드러냈다.
반면 글로벌 흐름은 더욱 적극적이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포함한 친(親) 암호화폐 정책을 추진 중이고, 일본과 호주는 점진적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은 거래를 전면 금지했지만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검토 중이다.
전망 : 회색지대 속 인도의 선택
인도는 2021년 민간 암호화폐 전면 금지 법안을 준비했으나 무산됐고, 2023년 G20 의장국으로서 글로벌 공조를 촉구했지만 자국 내 논의는 지연됐다. 2024년 예정됐던 토론 문서 발간도 미뤄졌다. 그 사이 투자자 피해 사례와 거래소 해킹 사건이 발생하며 규제 필요성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여전히 “섣부른 제도화는 위험하다”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결국 인도의 암호화폐 정책은 부분적 승인·고강도 세금·제한적 감독이라는 ‘회색지대’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스테이블코인과 글로벌 규제의 통일성이 인도의 태도 변화를 이끌 주요 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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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 스포츠 전문 프리랜서 기자 Dragon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