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디지털 루피’의 본격 도입을 선언하며, 민간 암호화폐를 향한 경계심을 한층 강화했다.
피유시 고얄 인도 상공부 장관은 최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경제 협력 포럼에서 “준비은행(RBI)이 보증하는 디지털 화폐를 곧 선보일 것”이라며 “이 시스템은 빠르고 투명하며 완전히 추적 가능한 거래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의 디지털 루피 출시는 기술 혁신이라기보다,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비보증 암호화폐’를 견제하려는 정책적 의도가 더 짙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얄 장관은 “정부가 보증하지 않는 암호화폐는 가치 보장이 없으며, 누구도 그 뒤를 책임지지 않는다”며 “금지는 아니지만 매우 높은 세금을 부과해 이용을 억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글의 목차
‘금지 대신 과세’…암호화폐를 비공식 영역으로 밀어낸 정부
현재 인도는 암호화폐 수익에 30% 세율, 그리고 거래 금액 1만 루피 이상에 1% 원천징수세(TDS)를 부과하고 있다.
이 조세 구조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사실상 암호화폐 시장을 비공식 영역으로 몰아내는 압박 수단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규제는 곧 합법화”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명확한 법적 틀을 피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인도 내 주요 거래소와 개발자 다수가 해외로 이탈했고, 국내 거래량의 상당부분이 역외 시장으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인도는 2025 블록체인 분석 회사 체이널리시스의 글로벌 채택지수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금지와 열풍이 공존하는 기형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
디지털 루피, ‘감시 가능한 화폐’로 등장
인도준비은행은 이미 2022년부터 소매·도매용 디지털 루피 파일럿을 진행 중이며, 2025년에는 예금 토큰화 시범 사업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디지털 루피는 거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면서 모든 자금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정부는 이를 “투명성과 효율의 상징”으로 내세우지만, 업계는 “국가 주도의 감시 가능한 화폐”라며 우려를 표한다.
CBDC의 기술적 기반은 블록체인이지만, 권한은 중앙은행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탈중앙화를 핵심 가치로 삼는 암호화폐의 철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인도의 디지털 자산 루피는 블록체인을 흡수하되, 자유를 배제한 형태의 ‘통제된 혁신’으로 평가된다.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있지만, 통제권은 여전히 정부에
최근 니르말라 시트라만 재무장관이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시스템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일각에서는 인도가 루피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여당 인사들이 제시한 모델 역시 정부 보증·국채 담보를 전제로 한 ‘공공형 스테이블코인’이다.
이는 민간 주도의 혁신이 아닌, CBDC의 확장선에 불과하다.
결국 인도의 정책 방향은 “암호화폐는 세금으로 제어하고, 블록체인은 정부가 통제한다”로 요약된다.
통제의 성공일까, 기회의 상실일까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디지털 결제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와 불투명한 정책은 젊은 개발자와 투자자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전문가들은 “CBDC가 금융 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민간 혁신을 억누르는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루피는 분명 인도의 금융 체계를 현대화할 열쇠다. 그러나 그 열쇠가 ‘개방된 시장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지, 아니면 ‘정부 통제의 문’을 잠그는지는 확실치 않다.
인도는 지금, 블록체인의 미래를 통제할 지 혹은 함께 성장할 지의 기로에 서 있다.
면책 조항 : 이 기사는 정보 제공의 목적으로만 해석되어야 합니다. 시장 상황은 급변할 수 있으므로, 위 정보를 근거로 한 투자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블록체인&스포츠 전문 프리랜서 기자 Dragon Cho]